요즘 것들 “할 말하며 사는 나” VS 꼰대 “나때는 말이야”
세기의 대결이다. 많은 조직에서 요즘 것들과 꼰대가 격렬하게 대립하고 있다. 한 자리에 모이면 말이 없다. 계층별로는 활발히 대화하지만 여러 세대가 모인 자리에서는 자칫 세상 혼자 살아가는 ‘요즘 것들’로 낙인 찍힐까봐, 시대가 어느 때인데 쉰 소리하는 ‘꼰대’로 불릴까봐 입다물고 넘어가는 것이 상책이라 판단하는 듯한다. 서로 눈치게임이라도 하듯이 한참 분위기를 살피다 적당한 발언으로 논의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비슷한 세대끼리 다시 만나 미처 못다한 대화를 본격적으로 이어가며 우리만의 강력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세대 갈등이 유례없던 현상은 아니라는 점이다. 기원전 1700년경 수메르 점토판에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 버릇이 없다” 라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서는 인류 역사에 언제나 존재하는 클리셰일 수도 있다.
2019년 9월 25일, 영국 공영방송 BBC가 오늘의 단어로 ‘꼰대’를 선정하고 아래와 같이 정의했다.
I AM ALWAYS RIGHT. AND YOU ARE ALWAYS WRONG.
쇼미더머니 배틀에서 만난 사이처럼
그럼에도 근래 세대 간의 이슈는 꽤나 치열하다. 서로를 대상화하는 것을 넘어 극혐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양쪽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각자가 상대로 인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다는 정당성을 주장하며 상대에 대한 비판을 종종 ‘안타깝다는’ 듯이 표현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조직생활 오래 하다 보면 그렇게 되는거겠죠 VS 우리 때는 꿈도 못 꿨는데,,’ 상대를 어떻게든 이해해보려는 마음반, 앞뒤 맥락없이 비판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반으로 느껴진다. 서로는 그렇게 같은 공간에서 상대와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단절된 채 매일의 일상을 살아간다.
서로의 말말말
젊은 세대가 말한다, ‘뭐가 힘드냐고 물어봐서 대답했을 뿐인데 대체 그게 뭐가 힘드냐면서 정신교육을 한참 받았다.’ 답이 정해진 질문의 황당함을 토로하며 이제는 그런 질문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고 했다. 옆에서 누군가 덧붙였다. ‘나는 이거라고 생각하는데, 00씨 생각은 어때?’ 이런 질문도 한 두번 당한 것이 아니라며 절대 본인 생각을 말하면 안된다고 진절머리 치듯 말한다. 한편 근래 만난 팀장님이 말했다, ‘나는 본인들에게 상처주면 안되는 사람이지만, 본인들은 나에게 너무 쉽게 상처 준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팀장님들이 일제히 동의했다. 또 다른 팀장님은 이렇게 말했다, ‘무슨 말만 하면 꼰대라고 하니까 말을 못하겠다.’ 리더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말 마저도 꼰대 취급 받는 현실이라며 대화의 어려움을 피력했다. 그러다 보니 ‘나는 그냥 꼰대할란다~’ 라는 체념으로 이어지곤 한다. 이유야 다르겠지만 어찌됐건 양쪽의 공통점은 서로에게 불통을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장이 바라보는 사원 | 사원이 바라보는 리더 |
우리는 왜 이 지경이 됐을까
양쪽은 전쟁에서 만난 적이 아니다. 다만, 조직을 둘러싼 급작스런 변화를 맞이하여 무게 중심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혼란을 겪고 있을 뿐이다. 이전 세상에서는 조직의 무게 중심이 선배 세대에 쏠려 있었다. FAST FOLLOWER로서 조직이 달성해야 하는 목표와 방법이 비교적 명확했고 선배 세대의 경험과 정보에서 곧잘 답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후배 세대는 선배들의 의사결정을 발빠르게 실행에 옮겨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이 조직의 미덕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 변화가 어떻게 올지 모르는 VUCA의 세상이다. FIRST MOVER로서 발돋움한 많은 조직들은 스스로 방향성을 설정해야 하는 동시 모방하는 추격자와 간격을 벌리기 위해 도전과 혁신을 거듭해야 한다. 그래서 조직은 세상의 변화에 보다 민감하게 반응하며 변화를 다스릴 수 있는 새로운 종류의 힘을 갈망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를 견인해줄 것으로 보이는 밀레니얼이라는 세대의 강력한 등장과 함께 조직의 무게 중심은 급격히 후배 세대로 옮겨가게 되었다. 지금의 혼란은 ‘나’ 라는 존재가 중요한 신인류 밀레니얼의 등장과 예측불허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그간의 조직 운영 방식으로부터 급격히 탈피하게 된 복합적 결과이다.
말로 내뱉어지는 서로에 대한 답답함 이면에는 각자에게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존재할 것이다. 선배를 향한 후배의 회의적 시각은 현장 상황도 모르면서 내리는 의사결정의 불합리함을, 새로운 생각과 시도가 충분히 검토될 기회 없이 즉각적으로 비판 당하는 것에서 비롯한 것일지도 모른다. 반대로 후배를 바라보는 선배는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을 살며 새로운 생각을 주장하는 과정에서 그간의 방식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불쾌하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MILLENNIAL MOMENT(전세계 밀레니얼 세대는 2020년 이후, 노동인구의 35%를 차지하고 소비력이 X세대를 추월하면서 경제활동의 주력세대가 될 것)가 도래했다. 2010년에 발표된 ‘MILLENNIALS IN THE WORKPLACE: A COMMUNICATION PERSPECTIVE ON MILLENNIALS’ ORGANIZATIONAL RELATIONSHIPS AND PERFORMANCE’ 라는 논문에서는 밀레니얼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1) 커뮤니케이션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특히, 리더와 자주 대화하고 싶어한다. 내가 잘하고 있는지 확인 받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이는 어린 시절, 부모님 및 선생님과 밀접하게 지내며 무엇을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자주 확인 받았던 습관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2) 나를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에게 더 많은 정보와 결정권이 있기를 바란다. 이 역시 부모님과 선생님에게 집중 관심을 받으며 성장한 배경이 영향을 미쳤다. 3) 여러 사람과 함께 하는 팀 플레이에 익숙하다. 학습 과정에서 이러한 종류의 과제를 반복적으로 수행한 결과, 팀으로 하는 일이 익숙한 반면 이로 인해 단독 의사결정 및 책임이라는 무게를 온전히 경험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우리는 양쪽 모두 필요하다
이런 세상에서는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 정보와 경험의 다양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조직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길이다. 다시 말해, 요즘 것들의 창의력과 꼰대들의 통찰을 결합해 시너지를 내는 것이 관건이다. 이를 위해서는 서로를 단정짓는 프레임을 걷어내고 상대와 조화롭게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모두의 숙제, 세대 공존은 어떻게 시도할 수 있는가?
첫째, 서로를 인간적으로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수직구조는 피하기 어렵다. 그러나 인간적인 차원에서 상대를 ‘동료’로 바라보는 것은 가능하다. 같은 조직에서 함께 일하는 평등한 인간으로 서로를 대하는 것을 연습해야 한다. 나아가, 무조건적으로 직급에 의해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정보에 기반해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핵심이다. 대부분의 조직들이 사다리 위쪽에 위치한 정보를 가장 귀중한 것으로 여기는데, 변화 무쌍한 오늘날의 환경에서는 현장에 있는 정보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현장의 생생한 정보는 구성원들이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들의 정보도 의사결정에 포함되어야 한다. 둘째, 서로의 역할에 따른 자율을 보장하는 것이다. 각자에게 역할에 맞는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리더는 ‘무엇’을 결정하는 전략적 자율(STRATIGIC AUTONOMY)을, 구성원은 ‘어떻게’를 결정하는 운영적 자율(OPERATIONAL AUTONOMY)을 맡는 것이다. 리더가 무엇을 성취해야 하는가에 대한 방향성과 목표를 설정하면, 구성원은 각자에게 주어진 일을 실행하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모든 것을 이분화하여 각자의 역할을 선 긋고 시작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행동이다. ‘무엇을 & 어떻게’에 대한 합을 충분히 맞춰본 이후 점진적으로 자율을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며, 하버드 경영대학원 석좌교수 테레사 애머빌은 리더와 숙련된 실무자가 함께 논의하여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말한다. 셋째, 여러 세대가 함께 공존하기 위해 모두가 동일하게 지키면 좋을 조직의 그라운드 룰을 세우는 것이다. 어느 한쪽에 일방적으로 요청하는 것이 아닌 더 좋은 조직을 위해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모두가 합의한 안을 조직의 그라운드 룰로 공유하는 것은 서로의 행동을 보완해주는 가이드 역할을 해줄 것이다. 예를 들어, “무조건 꼰대라고 비난하지 않기”, “서로의 생각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라는 관점 갖기”와 같은 그라운드 룰을 세울 수 있다. 넷째, 대화의 관심사는 상대에게 맞추는 것. “너 신해철 알아?”라는 말에 후배가 속으로 말한다. “부장님은 니키 미나즈 아세요?” 우리는 누구나 나를 기준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아는 것을 상대도 아는지 확인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는 상대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것 중에, 우리는 서로 아는 것이 다른 것 뿐이다. 대화는 서로의 생각과 경험을 연결하고 확장하는 유일한 통로이다. 이 통로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인간대 인간으로 DIALOGUE(라틴어 어원에 의하면 ‘의미 사이를 관통하는’ 이라는 뜻을 내포함)할 줄 알아야 한다. 서로에 대한 가정을 보류하고, 서로를 동료로 생각하며, 서로의 생각을 탐색하는 것이 대화의 전제가 될 때, 양쪽은 서로와 통하는 대화를 할 확률이 높다.
Never tell people how to do things. Tell them what to do and they will surprise you with their ingenuity by Janz et al
마이클 세일즈라는 학자는 말한다. 조직의 TOP, MIDDLE, BOTTOM은 모두 저마다의 고충을 겪는다고. TOP은 늘 과부하 상태이다. 많은 정보를 소화하고 그에 맞는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뿐 아니라 TOP을 위한 전용 공간에 물리적으로 떨어져 고독한 외로움을 겪는다. MIDDLE은 자신이 동의하지 않은 의사결정을 전달하고 실행하도록 촉진하는 과정에서 TOP과 BOTTOM, 양쪽의 압박을 받는다. 마지막으로 BOTTOM은 왜 나를 늘 무시하는가에 대한 부당함과 무력함을 경험하며 일상을 살아간다. BOTTOM의 눈에는 조직의 부족함이 유난히 잘 들어온다. 그런데 내 목소리는 전혀 반영되지 않는 현실이 밉다. 모두가 고충을 겪음에도 각자의 눈에는 ‘나’의 고충이 제일 큰 법이다. 고충의 모양은 다르지만 서로의 고충을 공유하고 공감할 때 조직은 유기체로써 성장하고 진화할 것이다. 요즘 것들과 꼰대 사이의 전쟁도 마찬가지다. 양쪽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각자의 입장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공존과 통합의 실마리는 내 얘기만 할 것이냐 아니면 상대 얘기도 들어볼 것이냐에 달려 있다. 서로가 무엇을 말하는지 인내심을 갖고 들어보기를, 그리고 당장 반박하고 싶은 충동을 세 번은 참아보기를. 그러면 지긋지긋한 꼰대와 유별난 요즘 것들이 아닌 ‘그 사람’의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오랜 시간 조직에서 헌신한 선배 세대에게 존경을, 치열한 경쟁의 시대에 제 몫을 해내기 위해 노력하는 후배 세대에게 박수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