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하는 리모트 워크

#1 VIRTUAL TEAM을 만나다

작년 2월, 글로벌 회사의 워크숍을 진행하기 위해 싱가폴을 방문했다. 이번 워크숍은 아시아 지역에 흩어져 일하는 팀이 1년 만에 모이는 중요한 자리였다. 리더를 포함해 총 9명으로 구성된 이 팀은 리더와 팀원 3명은 싱가폴 아시아 헤드쿼터에서 근무하고, 나머지 6명은 각각 호주, 말레이시아, 태국, 중국, 인도네시아에서 일하고 있었다. 이 날은 컨설턴트인 나를 비롯해 5개국에서 근무하는 구성원들이 모두 싱가폴에서 모이는 특별한 날이었다. 아침 8시, 싱가폴의 부두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빌딩 회의실에서 팀과 만났다. 팀은 오랜만에 만난 동창처럼 한참 동안 회포를 푸는 인사를 나누었다. 컨퍼런스콜을 통해 상시 소통하며 업무해왔을 터이지만 대면 만남은 서로의 존재감을 확실히 느끼게 해주었다.

팀의 주요 아젠다는 “관계”였다.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다 보니 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전무했다. 그러므로 팀은 물리적 거리를 극복할 수 있는 단단한 관계가 필요했다. 그래서 업무적 관계를 넘어 인간적인 측면을 서로 이해하고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아가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팀에게 특별한 사전 미션을 주었다. 바로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물건 가져오기. 각자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나를 움직이는 힘이 무엇인지를 자연스럽게 공유하기 위해서였다. 모두 저마다의 삶이 담긴 인생의 물건을 서로에게 소개했다. 아버지의 유품, 어머니로부터 받은 편지, 어린 시절의 가족사진, 그리고 통기타까지 다채로운 물건들에 얽힌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박장대소를 터트리기도 하고 함께 뜨거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 대화가 마무리되었을 때는 어느덧 오후 3시가 조금 지난 상황이었고 우리는 남은 3시간 동안 더 효과적으로 업무를 추진할 수 있는 방법을 탐색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 논의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서로에 대한 이해가 생기고 나니 일의 대화가 한결 수월해진 것이다.

핵심은 거리가 아니라 관계다

매일 만나도 어색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랜 시간을 두고 만나도 편한 사람이 있다. 그러니 문제는 거리가 아니라 관계에 있다. 마거릿 헤퍼넌은 ‘기업의 생산성을 혁신하는 핵심 요인은 조직 내 쌓이는 사회적 자본’에 있다고 말하며 사회적 자본을 키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드러내는 것이 필요하다. 하버드대학의 발달심리학자 로버트 키건 교수는 ‘우리 모두 회사에서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인 척’ 한다고 말했다. 나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위험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를 드러내지 않고서는 사회적 자본을 강화할 수 없다. 나의 생각, 꿈, 두려움, 경험, 목표를 공유할 때, 관계가 형성되고 서로 간의 신뢰가 쌓인다. 이런 신뢰는 다시금 성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집단 결속력(구성원들이 팀에 머무르고자 하는 의지로 발생하는 힘)으로 이어진다. “서로에 대해 모르고 싶습니다”를 외치게 된 요즘이다. 서로의 존재가 참으로 유쾌하지 않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럼에도 누구나 대화가 잘 통하고 함께 협력하는 것이 즐거운 팀에서 일하고 싶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업무적 관계를 넘어 인간에 대해 알아가려는 서로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일방적이거나 급진적인 방법은 오히려 서로에게 독이 될 수 있으니 상대가 관심을 갖는 주제에서 출발해 서서히 알아가 보는 시도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2 재택근무팀을 만나다

같은 해 4월, 같은 글로벌 회사의 한국지사에서 일하는 팀을 만났다. 이 팀은 일본인과 중국인 상사 두 명이 함께 이끄는 팀으로, 이들은 각각 일본과 중국에서 컨퍼런스콜을 통해 팀을 리딩하고 있었다. 즉, 상사가 한국지사를 방문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사무실에서 상사와 만날 일이 없었다. 그리고 팀 구성원들은 오랜 시간 대부분 재택근무를 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벚꽃이 만발한 봄날, 워크숍을 위해 일본과 중국에 있는 두 명의 상사가 모두 서울로, 그리고 재택근무를 하던 구성원들도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였다.

팀은 서로에게 익숙한 듯했지만 미묘한 어색함이 느껴졌다. 그래서 ‘혹시 우리 팀이 함께 논의했으면 하는 주제’가 있는지 물었다. 큰 원으로 모여 앉은 팀 주변으로 침묵이 흘렀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누군가 정적을 깼다. “요즘 다들 일하는 거 어떠세요?” 처음엔 질문이 모호하다고 생각했지만 곧 그 질문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재택으로 업무 하는 것’이 어떤지 묻는 말이었다. 모두들 아주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근래 서로가 어떤 업무를 하는지, 함께 일하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약간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던 듯하다. 각자는 재택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었지만 정보가 충분히 공유되지 않았다. 직속 상사와 나누는 커뮤니케이션을 제외하면 구성원간 대화의 접점이 생길 여지가 마땅히 없었다. 함께 논의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다음에 만나면 하자’로 미루게 되었다. 팀은 함께 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목요일은 모두가 꼭 사무실에 나와 근무하고 같이 점심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그리고 각자가 재택근무를 하고 싶은 요일을 정하고 되도록 그 날을 제외하고는 사무실에 출근하기로 합의했다. 팀의 그라운드룰이 모두 정해졌을 무렵, 누군가 말했다. “저만 그런 줄 알고 말 꺼낼까 말까 엄청 망설였어요.” 다들 웃으며 같은 마음이었다고 했다. 혹시 내가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아닌지, 나도 지금의 방식이 편한데 괜히 내 발목 잡는 것이 아닌지 모두들 고민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팀은 함께 모이길 스스로 선택했다. 우리에겐 함께 모여 일하고 싶은 의지가 있다.

팀이 함께 내린 결정

리모트 워크의 핵심, 보이지 않는 서로에 대한 대한 신뢰와 일하는 방식에 대한 약속

작년 두 팀을 만났을 때만 해도, 사무실에 출근해 하루 8시간을 보내는 것이 조직의 보편적 일상이었다. 그러나 올해 많은 조직들이 재택근무를 시행하며 우리 사회가 뜻하지 않게 새로운 형태의 근무 방식을 경험하게 되었다. 일하는 장소의 변화는 커뮤니케이션, 일하는 방식, 리더십에 이르는 조직의 다양한 변화를 동반했다. 재택근무로 오히려 업무 효율성이 강화되기도 했지만 사무실에 모여 함께 일하던 때에는 없던 새로운 고민이 시작되었다. 물리적 거리를 극복하는 원격근무 툴을 제대로 도입하지 못한 상황에서 갑작스레 제도의 변화를 맞이한 조직들은 업무 지시와 공유를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해졌다. 한편, 서로의 일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 ‘과연 제대로 일하고 있는가’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업무 진척 사항을 시간 단위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곳도 있다는 후일담도 들은 바 있다.

시공간의 자유도가 올라가는 유연한 근무방식으로 업무의 생산성을 높이며 구성원과 조직이 함께 윈윈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업무를 재정의하는 것이다. 리모트의 저자, 제이슨 프리드는 중요한 것은 시간표가 아닌 업무를 완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보는 앞에서 일하고 있는 모습보다 약속한 바를 달성했는가가 관건이다. 그러므로 각자가 성취해야 하는 목표를 명확히 설정하고 평가하는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신뢰와 그라운드룰이다. 같은 공간에 함께 있지 않은 상대가 열심히 일할 것이라는 믿음 없이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그리고 이 충동은 통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유연한 근무방식이 전제하는 인간은 통제해야 하는 대상이 아닌 ‘자율 속에서 역량을 발휘하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자율은 더 좋은 업무 성과를 내는 환경인 셈이다. 다만, 자율적 환경이 주어진 즉시 가시적 성과를 내는 것이 어려울 수 있으니 조직과 리더는 구성원이 성과를 내기까지 신뢰하며 기다리는 것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맹목적 신뢰(blind trust)는 오래가지 못하므로 공통의 일하는 방식을 통해 실체 있는 신뢰를 쌓아야 한다. 따라서 각 팀만의 그라운드룰(group norm)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각자의 업무 일정 공유와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대한 합의가 성취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신뢰를 지속시킨다. 이러한 합의 없이는 ‘각자의 열심’이 서로에게 충분히 전달되지 않거나 팀으로 함께 일하는 것이 무색해진다. 작년 12월, 유연근로제를 도입한 정부출연연구소를 위해 Work Way 워크숍을 기획했다. R&D 기관인 만큼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각 연구자가 스스로 일하는 시간과 장소를 결정할 수 있는 자율권을 부여한 것이다. 다만, 하나의 조직으로서 같은 목적을 추구하는 동시 협력을 이어가고자 ‘서로를 위한 & 서로가 함께’ 지켜야 할 그라운드룰을 수립했다. 예를 들어, 1) 각자의 일정은 반드시 공용 달력에 기록할 것 2) 커뮤니케이션 강화하기: 서로에게 전화하는 것을 불편해하지 말 것, 서로에게 최대한 빨리 응답할 것 3) 오프라인 미팅을 요청할 때 적극적으로 응할 것. 이처럼 연구센터마다 구성원들이 모여 자신의 상황을 반영한 다양한 그라운드룰을 도출했다.


유연한 근무방식을 강화하는 비결은 거리를 넘어서는 관계, 유연함을 관통하는 질서, 그리고 유연함이 조직에 불러올 변화에 대한 믿음이다. 방법은 어렵지 않다. 진짜 대화로부터 출발해 관계를 강화하고 함께 그라운드룰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이처럼 스스로 만든 질서 있는 자율을 토대로 조직은 구성원을 신뢰의 눈으로 바라보며 몰입을 촉진하고, 구성원은 자율 속에서 보다 큰 성취를 이루는 윈윈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

호주에 본사를 두고 영미권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컨설팅 회사 LIW와 파트너로 일하며 다양한 글로벌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LIW는 조직의 효율성 및 효과성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대가들의 이론을 기반으로 참여식 활동을 결합한 고도의 프로그램을 설계하는 일에 탁월합니다. 새로운 프로젝트에 임할 때마다, 여러 나라에서 활약하는 컨설턴트들과 온라인에서 만나 평균 10시간 정도의 ‘TRAIN THE TRAINER SESSION’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들은 프로그램의 설계자이거나 해당 프로그램을 여러 차례 리딩해 풍부한 경험을 쌓은 트레이너들입니다. 위의 프로젝트의 경우, 각각 시드니와 샌프란시스코에서 활동하는 컨설턴트들로부터 트레이닝을 받았으며 설계 의도와 세션 마다의 핵심이 무엇인지 학습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트레이너들의 생생한 후기를 듣기도 하고 서로의 프로젝트 경험을 공유하기도 합니다. 프로그램의 CONTEXT와 CONTENTS를 충분히 이해하고 나면 그때부터는 해당 프로그램을 새롭게 진행하게 될 제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작업이 이루어지곤 합니다. 프로그램의 본질적 목적과 큰 흐름에 충실하되 진행하는 메인 컨설턴트의 생각을 흡수시키는 것으로, 내용의 내재화를 넘어 현장의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반응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것입니다. LIW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의뢰할 때마다 이번엔 어떤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까 항상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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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NA
Leading the journey in pursuit of great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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