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을 마주하는 우리의 보편적 태도
‘좋은게 좋은거’ 라는 정서가 발달한 우리나라 조직에서 갈등은 단연 터부시되는 주제이다. 퇴사 경험이 있는 직장인 2,288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차마 밝힐 수 없었던 퇴사 사유 1위가 상사/동료와의 갈등 때문으로 응답되었다고 한다. 인간사에 갈등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나, 유독 ‘조직에서의 갈등’을 기피하는 문화로 인해 사안을 적시에 다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개선할 여지가 충분한 안건들도 시간이 흐르며 고착화되거나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갈등’이라는 주제로 문제해결을 요청하는 경우는 실제 갈등이 발생하는 빈도와 비교해 매우 낮은 편이며 더 이상 지금과 같이 살 수 없다고 판단한 최후의 상황인 경우들이다. 흥미로운 점은 갈등을 다루면서도 갈등이라는 단어를 절대 사용하지 않기를 당부하는 것이다. 괜히 조직 내에서 갈등 워크숍을 한다고 하면 해당 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생긴다는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조직이 정말로 염려해야 하는 것은, 갈등 그 자체가 아니라 갈등을 제대로 마주하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결과이며 주로 이중 커뮤니케이션 채널 생성, 파벌 형성, 퇴사와 같은 돌이키기 어려운 일들이다. *차마 밝힐 수 없었던 퇴사 사유 TOP7(잡코리아 x 알바몬)
여러 팀들을 만나다 보니 팀에 갈등이 존재하는가를 금방 눈치챌 수 있다. 팀에 갈등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오가는 소통의 양이 적은 것은 아니다. 갈등이 있더라도 매일 마주해 함께 일하기 때문에 어색한 침묵을 피하고자 대화한다. 다만, 변죽을 울리는 이야기들로 침묵을 채운다. 팀이 반드시 다뤄야하는 본질적 사안에 대한 대화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럴 때마다 ‘elephant in the room’이라는 표현이 떠오른다. 방 안에 거대한 코끼리가 있는 것을 모두가 알면서도 그 코끼리가 보이지 않는 척하는 현상을 뜻한다. 제 3자로서 팀을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다뤄야하는 사안이 있음에도 갈등이 표면화되는 것을 염려해 정말 필요한 대화를 피하고 있는 것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갈등은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이나, 인간은 본질적으로 갈등을 다툼으로 여긴다 by Raymond Dalio
갈등의 힘
갈등은 ‘구성원 간의 상호작용에서 발생하는 역학’으로,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팀 성과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갈등의 힘은 갈등이 부재할 때 발생하는 결과를 통해 더 잘 느낄 수 있다. 팀의 조화로운 분위기를 망치는 것을 염려해 갈등을 회피할 경우, 집단사고를 할 확률이 높고 창의력 및 의사결정의 질이 감소하여 성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반면, 심리적 안전감이 높은 팀들은 오히려 갈등을 통해 업무 성과를 향상시킨다고 밝혔다. 학습하는 조직의 저자, 피터 센게는 ‘흔히 좋은 팀이라고 하면 갈등없이 마냥 조화로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실상은 오히려 그 반대다. 내 경험에 따르면, 팀이 부단히 학습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가장 믿을 만한 표시가 바로 아이디어 사이에서 눈에 띄는 갈등’ 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조직이 중요한 사안을 다룰 때, 보다 의미 있는 토론을 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가정을 재고하고 지나치게 빠르게 동의하고 넘어가는 현상을 극복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구성원들이 갈등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If teams avoid task conflict in order to maintain a harmonious group atmosphere, counterproductive group states such as groupthink may arise. As creativity and decision quality drop due to these counterproductive states, task performance should suffer. by Janis
갈등이 생기는 근본적 원인
갈등이 발생하는 원인을 들여다보면 갈등은 필연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첫째, 협의 착각 효과(false consensus effect)이다. 나의 의견이나 판단이 옳다고 생각해 다른 사람도 나와 같은 의견과 판단을 내릴 것이라 착각하는 경향이다. 나와 상대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발견할 때, 일반적으로 우리는 놀라며 불편함을 느끼고 나의 생각이 옳다고 증명하길 원한다. 그러나 세상에 나와 똑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겉보기에 비슷한 생각도 자세히 알아보면 다른 점이 많다. 다양한 생각들이 발산될 때, 갈등을 겪는 것은 당연하다. 둘째, 소박한 실재론(naïve realism)이다. 각자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내 주관적 경험과 객관적 현실 사이에 그 어떤 왜곡도 없다고 믿는 경향이다. 흔히 ‘나 같이 객관적인 사람이 어딨냐’ 라는 말이 이 인지적 오류에 해당한다. 우리는 종종 각자의 객관성을 주장하면서도 상대를 주관적이라 비판한다. 다시 말해, 같은 현상을 보고도 다르게 해석하므로 그 다른 해석에 대해 갑론을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본적 귀인 오류(fundamental attribution error)로 ‘내로남불’이 생기는 원인이다. 상대가 하는 행동의 원인은 내부적 요인(성격 및 동기)에서 찾고, 내 행동의 원인은 외부적 요인(상황 및 환경)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즉, 내게는 그럴만한 상황적 이유가 있었던 것이고 상대는 그러지 말았어야 한다며 탓하는 것이다. 이런 인지적 편향은 사람 사이에 생기는 갈등이 매우 자연스럽다는 것을 깨우쳐준다.
훌륭한 팀 vs 평범한 팀의 갈등을 다루는 자세
갈등을 마주하는가 혹은 회피하는가? 크리스 아지리스는 ‘훌륭한 팀과 평범한 팀의 차이는 어떻게 갈등을 직면하고 갈등으로 인한 방어적 태도에 대처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훌륭한 팀에서는 갈등이 생산적으로 작용한다. 서로가 다양한 아이디어를 발산하고 통합하며 혼자서는 이르지 못할 최선의 시책을 강구하는 과정에 갈등이 필연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진정한 ‘좋은 조직’은 각자의 생각을 드러내며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그 차이를 좁혀가는 과정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표면적 조화를 넘어 관점을 확장하고 서로 다른 생각을 흡수하여 새로운 하나에 이르기 위한 충돌, 이해, 통합을 기꺼이 시도한다. 이와 같은 조율의 대화를 통해 서로의 입장을 헤아리고 공감대를 형성하며 공동의 방향성을 찾게 된다. 반면, 평범한 팀에서 나타나는 갈등 현상은 표면적으로는 갈등이 없는 모양새이거나 이미 굳어져 극복될 기미가 없는 분열 양상을 보인다. 먼저, 겉보기에 매끄럽게 돌아가는 팀은 각자가 생각을 꺼내기 시작하면 타협 불가능한 격차로 인해 분해될 것이라 바라보기 때문에 상충하는 관점을 억누르는 것이 팀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여긴다. 이미 분열 양상이 고착화된 팀은 모두가 암묵적으로 서로의 입장을 알고 있음에도 격차를 줄이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이런 경우는 누군가 팀을 나가거나 팀 구성이 바뀔 때까지 버티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한다. *’학습하는 조직’에서 갈등과 방어루틴을 다루는 방법을 잘 소개함
무엇이 갈등을 마주할 수 있도록 하는가
팀으로 하여금 갈등을 마주하도록 하는 힘은 신뢰에서 비롯된다. 경영 컨설턴트, 패트릭 렌시오니는 상호간 서로 다른 생각을 인정한다는 신뢰가 존재할 때, 서로의 다름을 통합하여 최선의 시책을 강구하려는 의지가 생긴다고 말한다. 즉, 다양한 생각이 발산되고 대립적 관점이 생성되더라도 갈등을 다룰 수 있는 힘이 존재한다고 느껴질 때 갈등을 회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힘은 바로 상호간의 신뢰를 기반으로 하며 신뢰의 본질은 취약함을 보여주어도 안전하다는 믿음이다. 다시 말해, 내가 모르는 것 혹은 내가 실수한 것을 인정해도 나를 무능한 인간으로 판단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다. 이러한 신뢰가 있을 때, 내 생각을 공유하기도, 상대의 생각을 인정하기도 한다. 나아가 설령 내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논의 과정에 치열하게 참여했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결정된 사안을 지지하고 실행에 몰입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갈등이 생겨도 괜찮아’ 라는 마인드셋으로 서로의 생각을 열어놓고 적극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WE NEED CONFLICT!
우리에게는 갈등이 필요하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에이미 에드먼슨 교수가 관계적 갈등을 다룬 논문의 마지막 문단에서 소개한 세콰이어 나무 이야기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미국의 한 산림원은 세콰이어 나무가 잘 자라도록 모든 산불을 사전에 철저히 예방하며 나무들을 산불로부터 보호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세콰이어 나무들은 기대와 달리 성장을 멈추었다. 알고 보니 세콰이어 나무들은 씨앗을 퍼트리기 위해 불을 필요로 했으며 극심한 산불이 아닌 경우 불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방어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적절한 자연발생적 산불이 일어나지 않으니 점점 덤불이 무성해졌고, 산불이 일어날 경우, 덤불로 인해 일반적 산불의 온도보다 훨씬 높아졌다. 세콰이어 나무의 산불은 인간의 갈등과 비슷하다. 우리도 갈등을 겪으며 서로의 관점을 헤아리기도 하고, 보다 좋은 해결책을 강구하기도 한다. 무조건 산불을 피하는 것이 답이 아니었던 것처럼 갈등도 마찬가지다. 순간의 감정들을 염려하며 갈등을 외면했을 때의 결과는 꽤나 가혹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할 만한 것은 갈등 그 자체가 아닌 갈등 회피와 개선 지연으로 인해 발생하는 결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두려움 없는 조직의 저자, 에이미 에드먼슨 교수는 ‘Too hot to handle? How to manage relationship conflict’라는 논문에서 갈등의 유형으로 cool topic(업무 갈등)과 hot topic(관계 갈등)을 소개한다. 에드먼슨 교수의 갈등 연구에서 의하면 심리적 안전감을 기반으로 할 때, 업무적 갈등은 팀 성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반면, 관계적 갈등은 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그러나 업무 갈등과 관계 갈등을 명확히 이분화할 수 없으며, 업무 갈등이 곧 관계 갈등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본 논문은 hot topic에 대한 실제 연구 사례를 상세히 소개하며 관계적 갈등에서 나타나는 패턴과 갈등을 완화하는 방법을 소개한다.